우연히 네이버 연예 기사를 통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가 인터넷으로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촬영기간은 3일, 재밌게도 한국을 배경으로 배두나씨와 김주혁씨를 캐스팅 했더군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는 항상 챙겨보는 편입니다. 처음 그의 영화를 본 건 중학생때 일겁니다, 아마도. SBS에서 방영했었던 '러브레터'를 아주 푹 빠져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 영화관도 아니고 TV로 영화를 봤던 경험이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러브레터'를 아주 빠져들어서 봤다는 기억은 생생합니다.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서 나란히 누워 자고 있고, 고요한 한 밤 중 그 옆에 저만 홀로 깨어 구식 브라운관 TV를 유심히 뚫어져라 보고 있는 장면이 사진처럼 머리에 남아있거든요. 가족들이 각자 방도 아니고 거실에 누워서 잤던걸 보니 이사온지 얼마 안된듯 합니다. 샷시도 없고, 새로산 침대도 아직 안들어와서 거실에 함께 누워 잤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때 이 집으로 이사왔으니 시기에 대한 기억은 확실할 겁니다, 아마도.

재밌는건 그때 '러브레터'를 본건 확실히 기억나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는 겁니다. 확실히 전혀 졸지 않고 정말 재밌게 봤다는 기분은 나는데요. 이와이 슌지 특유의 아름다운 화면과 서정적인 음악이 계절적 분위기와 어울려 한 밤 중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한창 사춘기였기에 그 감정은 더 풍부하게 다가왔을 지도요. 여튼 내용도 제대로 기억 안나는데도 아주 특별하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여러 계기중 하나의 사례로 꼽을수도 있겠네요.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을 보게된 건 대학이후입니다. 그 때의 '러브레터'에 대한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늦가을 즈음 날씨가 쌀쌀함을 넘어 추워질 무렵 대학 기숙사에서 혼자 봤었습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눈내리는 배경의 영화를 보기엔 뭔가 이상하니까요. 그리고 이후 그

의 주요 작품들은 거의 봤습니다.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슈슈의 모든것, 립반윙클의 신부까지.

그의 작품은 완전히 밝거나 혹은 어둡거나 둘 중 하나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데 전 밝은쪽의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밝은 영화에서 특히 이와이 슌지의 미적감각이 더 풍부하게 살아나는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특히 그의 영화에서 '따뜻한 빛'의 사용은 정말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주곤합니다.


4월 이야기



러브레터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도 좋습니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영화지만 식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고조되는 그 부드러움 또한 좋습니다.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의 영화에선 일상의 복잡한 마음이 진정되고 감정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챙겨보려 하는 편입니다.




'장옥의 편지'는 유투브의 '네슬레 시어터'라는 채널을 통해 개봉되었습니다. 아마도 커피를 만드는 네슬레 사에서 후원하는 채널이겠지요. 일본인을 주로 타겟으로 하는 채널로 보이는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것 부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졌습니다.



영화는 15분에서 20분 가량의 4개의 이야기로 나눠져 있습니다. 내용은 한국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또한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임에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동질감과 국가적 경계를 넘어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를 일본인들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장옥의 편지'는 극중에서도 등장하는 소재지만, 극 밖으로 나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하는 편지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이러한 내용으로요.

"한국에서도 여성들은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소유물이 되고, 남편의 소유물이 되는 것 말이지요. 커피 한 잔의 여유라도 갖는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그러한 여성적 삶을 포기하고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어라 합니다. 하지만 차츰 변하고 있어요. 가부장적인 사회는 점차 자기 반성을 통해 천천히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직접적으로 사과의 말을 하지 못하고, 여성을 위한 도움이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차츰 더 바뀌어 나가겠지요. 일본은 어떠하신지요?"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지만 그 것을 분노와 슬픔의 감정으로 연결시키기 보다는 희망과 즐거움으로 연결할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낍니다. 비록 짧은 영화였지만 이와이 슌지만의 서정적인 메시지와 그만의 영상을 느낀 즐거운 한 시간이었습니다. 조만간 또 그의 영화를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장옥의 편지: https://www.youtube.com/watch?v=nzNl9MJjUMU&list=PLA_eLxzJ5UOnR8TtfkG82n39EtkRlvQSg&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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