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하로 향하는 길

    여행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최근 2년간 이렇다 할 여행을 하지 못했다. 여행을 하기에 금전적 여유도 없었고 마음속에 아름다움을 누릴 공간이 부족했다, 시간은 많은데 말이다. 이러한 욕구불만이 쌓이다 보니 종종 불면을 겪기도 했다. 대학생활 내내 나는 불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백수라는 신분은 사람을 아주 쉽게 변화시켰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미칠것 같은 마음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두고 살았다.

    지난 목요일이었던가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보고 문득 봉하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맞물려 바로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지금이 최적기인듯 했다. 여행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무현', 다른 하나는 '독서'.  영화를 보고 그가 궁금해졌고, 최근의 정치 현실을 보며 또다시 그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책을 읽기에 너무 좋은 계절이기도 했고, 시험을 앞둔 학생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와 토론을 재밌어 하는것 처럼 취직하기 싫은 백수가 자기소개서 대신 독서에 재미를 붙인 꼴이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당일치기 여행을 기획한 만큼 여행을 위해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물론 내 여행은 항상 즉흥적이었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하루 묵게 될 수도 있다는것을 염두에 두지만 최대한 움직임에 제약이 없도록 가볍게 가려 했다. 가장 중요하게 준비한건 노무현에 관한 책이었다. 어떤 책을 준비할까 생각하다 현 대통령과 가장 비교되는 그의 글과 말에 대해 이야기한 책을 사려했다. 원래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사려 했으나 재고가 없는 통에 대신 <대통령의 말하기>라는 책을 구입했다.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말하기든 글쓰기든 그것을 가치있게 만드는건 그걸 만드는 사람의 생각이니까. 이 책과 요즘 가장 재밌게 읽고 있는 하루키의 에세이 중 하나인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도 함께 챙겼다. 최근의 독서 패턴이 어려운 책을 독파하다가 중간중간 가벼운 책으로 머리를 식히는 식인데, 그러한 책에 가장 부합하는게 이 하루키의 에세이었다. 그의 소설은 그닥 나에게 별로 와닿지 않는 반면 그의 에세이는 정말로 재밌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그의 놀라운 표현력이 나를 매료시켰다. 이 글을 보는 독자중에서 주말의 나른한 오후에 카페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느낌으로 읽을 만한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에세이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 수건 하나 팬티하나 챙기고 이것으로 준비 끝.



    화요일엔 비 예보가 있었다. 어머니는 굳이 비오는데 여행을 가냐고했다. 머리 시릴정도로 가을의 파란 하늘을 보는것도 좋지만 비가 내리는 풍경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가을비는 내 여행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차의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독서에 집중력을 높이기도 했고, 비오는 시골이 일말의 소음마저도 차단시켜 연출하는 고요한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다. 아쉽게도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올 낌새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천안아산역에서 동대구를 거쳐 진영역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더 일찍 진영역에 도달하는 열차도 있지만 그러다간 열차안에서 진영역에 도착할때까지 모두 꿀잠으로 때워버릴것 같았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컨디션이 좋을 만한 시간을 택했다. 의외로 출근시간을 넘긴 시각의 ktx열차였지만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대부분의 경우 서울로 향하는 상행선 열차만 탔기 때문에 천안 아래로 내려가는 열차를 오랜만에 타는바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 ktx좌석의 편안함을 조금 느꼈다가 책을 꺼내 읽어내려갔다. 변화하는 바깥 풍경과 약간의 소음, 편안한 좌석,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신경 쓰는듯 안쓰는 듯한 주변 사람의 시선. 사람마다 최적의 독서환경이 제각각이겠지만 난 이러한 환경에서 매우 쉽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잠시 눈이 아파오거나 집중이 흐트러질 때쯤 시시각각 변화는 바깥 풍경을 보며 머리를 비우고 다시 책에 빠져들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못먹은 아침을 때우기 위해 용우동이라는 가게에서 튀김우동을 시켜 먹었다. 맛은 그냥 그저 그랬다. 분명 그 옛날 언젠가 역안에서 먹었던 우동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는데, 아동기의 기억을 넘어 청소년기 이후의 기억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맛의 우동을 먹어본 적이 없는듯 하다. 대전역 이었던가 분명 맛있었던 우동이 있었던거 같은데 말이다. 그 우동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이 가게 다음에는 올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다시 진영으로 향했다. 경부선 열차에 비해 확실히 적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각에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젊은 부부인듯한 커플도 보이고, 샐러리맨 처럼 보이는 사람도 보이고 나이드신 어르신, 공군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도 보였다. 도시에서 내릴것 같은 샐러리맨은 들어보지도 못한 역에서 내렸고, 선글라스를 낀 젊은 부부는 여행지가 아닌 듯 한 곳에서 내렸다. 흠 사실은 내가 잘 모르는 여행지 들이 여기 근처에 많을지도. 그런 생각과 함께 책도 함께 읽다보니 금세 진영역에 닿았다. 진영역은 읍내에서 적잖이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대중교통을 기다리기 보다는 마중나온 지인들의 차를 타고 하나 둘씩 빠르게 떠나고 있었다. 나 처럼 여행을 위해 이곳에 도착한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봉하마을로 가는 노선은 10번버스가 유일했고 12시 10분에 출발한다기에 그 사이 역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역 구석에 '화포천 아우름길'이라는 수상한 길을 발견했다.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화포천 주위를 산책하는 코스인 듯 했다. 그리고 코스 중간에 목표로 하는 봉하마을이 있었다. 걷는걸 좋아하는 나이기도 하고 좋은 풍광을 둘러보며 가을 정취를 맞는것 만큼 좋은 경험은 없기에 한 줌의 미련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들어온지 10분만에 다시 뒤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조금 가다 보니 이게 관광코스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명확한 길이 없었고, 우측 길에는 공사중인 포크레인과 공사 현장 건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헤메다가 시간 낭비하는건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미련없이 뒤로 돌아왔다. 아직 코스가 다 완성된건 아닌 듯 했다. 완성되면 누군가 저에게 알려주세요. 그나저나 역에 도착해보니 12시 15분이었다. 앞선 버스는 놓쳐버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했다. '다음 버스 13시 40분'...음?

    미련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번화하지 않은 시 외곽지역의 택시들이 늘 그렇지만 진짜 눈물나게 비쌌다. 기본요금은 3900원에서 시작했고 복합구간이라 140원씩 미터기가 올라갔다.(참고로 천안시내 기본요금은 2800원이다. 새벽 할증을 해도 3380원) 매번 이런지역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택시 기사들에게 왜 여기는 이런 요금이 책정되는지 묻곤 하지만, 어차피 이 지역의 상황을 잘 모르는지라 들어도 이해를 못하긴 마찬가지이다. 그저 아까운것. 진영역에서 봉하마을까지 요금 7680원.




    아무래도 주중이다 보니 젊은 개인단위 관광객보다 나이드신 단체 관광객이나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았다. 혼자 여행온 이는 나 뿐인 듯 했다. 사실 사람이 거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원래 이렇게 방문하는 사람이 많았던 건지, 최근 개봉한 영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지금의 나라 현실을 보며 노무현이 떠오른게 나뿐이 아니었던 건지 새삼 궁금해진다.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 묘지와 노무현 추모의 집이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을의 바로 옆에 관련 장소들이 모두 있었다. 아니 봉하마을과 노무현이 함께 하고 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한듯 하다. 한 장소에서 노무현의 묘역도 보이고 생가도 보이고 추모의 집도 보이고,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봉화산의 부엉이 바위까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작디 작은 마을이었다.


    나는 마을 입구에서 국화꽃을 사들고 노무현의 묘역으로 향했다. 그의 묘역으로 향하던 나의 마음은 매우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서거하고 전 국민의 애도 물결에 빠져있고 모두들 그의 분향소를 찾아 죽음에 대해 한 마디 씩 하고 있을때, 나는 사실 그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고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가 나의 대통령이던 시절은 내 머리가 아직 완전히 크지 않았던 중고등학생 시절이었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을 때였다. 그가 어떠한 정치 역경을 겪어왔고, 어떠한 국민의 지지로 당선이 되었는지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던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죽음과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에 대해 반신반의했고 결국 그 애도 물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죽고 7년이 흐르는 동안 새누리당 치하의 대한민국은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현실의 연속이었다. 학창시절에 배운 국가의 역할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믿음, 민주주의의 가치에 관해 혼란이 올만한 사건들을 20대 대부분 기간동안 숱하게 봐왔었다. 국민들은 정의롭지 않고 불 합리적이며 억압된 현상에서도 "경제 때문에, 안보 때문에" 묵인하며 살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배반되는 현실을 보고야 만 것이다. 정의가 무너진 국가는 경제도, 안보도 그 어떤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들만의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고 그들만의 안보만 해결이 되었다. 때문에 그 어떤 대통령보다 정의를 중요시 했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한 가장 큰 목표를 국민과의 소통으로 삼았던 그가 다시 한 번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그의 죽음이 안타까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그리워 할 수 있게된 것이다.






   그의 묘역의 입구에 올라서며, 바닥에 적힌 수많은 국민들의 글을 보고 국민들의 참여를 바라고 소통을 하려 부단히 노력했던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죽음까지도 국민과 함께 했던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나 중간에 놓인 헌화대 위에 국화꽃을 놀려 놓고 그의 유해가 묻혀있는 너럭바위에 다다랐다. 차마 이루 말할수 없는 슬픔이 밀려 올려왔다. 자신이 평생 지키고자 한 신념이 깨어질때의 자괴감, 평생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의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지... 너무 가슴이 아팠다. 더 이상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기 싫었던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꾹 참았다. 진작에 울었어야 하는걸 이제와서 흘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제 모든 국민이 알 것이다. 곧 다시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이고, 더 이상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슬퍼할 필요도 없이 그의 노력에 감사하는 것으로 족한 세상이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울지 않으려 했다.

    묘소 옆을 지나 부엉이바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청바지에 니트차림은 등산하기에 썩 적합한 차림은 아니라 오르는데 약간 애를 먹긴했다. 부엉이 바위는 다른곳보다 높은 목책으로 막혀있었다. 부엉이 바위 위에서 아름다운 자신의 고향을 앞에 두고 떠나야 하는 그의 발걸음이 후련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겠지. 복잡한 마음이 자꾸 들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로 내려왔다. 그리고 추모의 집으로 향했다.




    추모의 집은 아직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시설이 지어지지 않아 그를 기념하기 위한 간이 건물과 같은 곳이다. 마당에는 그의 정치인생에서 유명해진 말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건물 한편에는 변호인, 정치인, 대통령,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동영상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이미 영화에서 많이 나온 동영상들을 다시 보며 울컥하기도 했다가 숙연해 지기도 했다. 반대편 시설로 옮겨가면 그의 일대기와 사진, 그리고 그의 유품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별히 넓은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관람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는다. 얼른 제대로 된 기념건물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생가와 묘역, 부엉이 바위 등산과 추모의 집을 둘러보는데 대략 두시간 반정도 소모한듯 했다. 이곳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워서 하이킹 복장을 하고 봉화산 꼭대기에 오르거나 주변 하이킹 코스를 둘러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었다. 그가 왜 이 주변 자연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곳에 아름다운 인물이 깃들어 있었다. 한 번쯤은 꼭 들러 볼 만한 곳입니다. 국립현충원의 대통령들의 묘소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국민친화적인 그의 삶을 이곳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실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언젠가 시간 되신다면 들러보세요. 아참 저처럼 버스를 놓치는 사람 있을지 몰라 버스 시간표도 찍어서 첨부해 봅니다.






    올때는 못탔지만 갈때는 10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진영역으로 가지는 않았다. 왔던길을 그대로 돌아가기엔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고 이대로 여행을 끝내긴 너무 아쉬우니까 말이다. 진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나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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